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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8)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관리자 2012-11-28 조회수 2,496
[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8)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전자신문 2003-04-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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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망울을 시샘이라도 하듯 봄비가 흩날리던 22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한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원장 정경자 http://www.bokji.or.kr).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이곳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린터로 출력해 깔끔하게 정돈된 IT교육 시간표 옆에 부착된 백지는 다른 IT교육기관에서는 보기 힘든 시각장애인 전용 ‘점자시간표’였다.

복지관 3층에 자리잡은 정보화교육센터의 시각장애교육생들은 봄비에 쌀쌀함을 느끼던 기자를 후끈한 열기로 맞이했다. 정보화교육센터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연령과 학력에 제한없이 누구나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윈도 기초 및 중급, 멀티미디어, PC통신, 인터넷 활용, 정보처리기능사 등 다양한 과정이 마련돼 있다. 총 14대의 컴퓨터에는 시각장애인 전용보조기구들이 장착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크린 리더와 화면 확대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갖추져 있다.

각 과정은 과목별 난이도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 등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된 강의는 오후 3시 20분까지 꽉 짜인 스케줄 속에 진행됐다. 강의가 진행된 제1정보화교육실과 제2정보화교육실은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후끈거렸다. 봄비가 내려 습도가 올라간 탓만은 아니었다. 수강생과 강사가 뿜어내는 열기가 좁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서 지루함이나 피곤함이 파고들 여지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강의 후 교육실 바로 옆 점자도서관으로 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가고 제1정보화교육실과 제2정보화교육실의 자리 재배치로 인해 잠시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교육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제1교육실로 모인 10여명은 나머지 공부를 자청한 사람이다. 학업 성취도가 낮아 나머지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치기 일쑤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필기시험 합격 후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우등생과 오는 5월 인터넷 정보검색사 시험 응시를 앞둔 수험생만 남은 것이다.

이우승 강사는 “교육생들이 제안해 정규 강의 이후에 별도로 특별학급을 편성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지난 2001년 8월부터 시각장애인의 정보화 이용능력 향상과 정보화 인력 육성을 목표로 시각장애인에게 IT 무료교육을 제공해온 정보화교육센터는 지난해까지 총 5명의 정보처리기능사를 배출했다.

이중 4명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IT 방문교사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달 평균 30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하는 센터는 지난 1월 ‘제1회 장애인정보화활용대회’ 정보검색부문에서 대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곳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의 꿈은 IT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힌 것을 단순히 생활에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IT 관련 전문직종에 취업, 전문인력으로 거듭나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자 숨은 뜻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IT 지식은 꼭 필요한 요소라고 힘줘 말하는 센터의 교육생들에게서 좌절감과 심리적 위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할 수 있다는 의욕과 넘치는 자신감만 있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품은 꿈을 펼치기에는 세상의 차별과 무관심이 너무 야속할 따름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IT교육 서적을 본 적 있습니까.”

“IT 전문서적 중에 시각장애인의 학습여건을 고려한 것이 있습니까.”

세상에 항의라도 하는 듯 거침없이 쏟아내는 한숨이다. 말문이 열리자 교육생들은 숨 돌릴 틈 없이 마구 퍼부었다.

“정보통신기술과 초고속통신망 보급이 세계 최고 수준이면 뭐합니까.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떠들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날로 화려해지고 있다고 하지요.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로 변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는 더 큰 소외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온나라가 드러나는 지표를 내세워 IT강국임을 자랑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때 차별받고 소외당하며 참아온 시각장애인들의 작은 외침이다. 자신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가 원망스럽단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차별과 소외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40대 초반의 한 교육생은 “일반인과 시각장애인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차별과 소외”라며 “시각장애인을 무턱대고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진정으로 시각장애인의 존재에 관심이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 하나 둘 센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센터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이곳의 시각장애인들은 내일의 새로운 빛과 희망을 찾아 잠시 쉴 뿐이다. 내일은 또다른 내일의 꿈과 희망을 준비한다. 이들이 솟구치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빛을 찾도록 하는 일은 첨단 IT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세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우승 정보화교육센터 강사>

“정보화교육센터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에게 IT교육을 제공하는 교육기관만은 아닙니다. 이곳은 시각장애인이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정보화교육센터에서 강의는 물론 관리까지 맡고 있는 이우승씨(25) 역시 선천성 각막혼탁증상을 가진 시각장애인이다. 흔히 저시력증으로 불린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한국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지난 92년 ‘제1회 전국맹아학교 컴퓨터 활용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 녹록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씨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시각장애인들의 반복적인 학습에 의한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시각장애인들이 정보화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 복습하고 이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정보화교육센터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보조기구를 구비하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가정에서 이를 갖추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형편상 이런 보조기구를 구입하는 데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보화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교육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피력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IT교육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의 높은 학구열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교육과정에 따라 장비와 콘텐츠가 업그레이드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는 시각장애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작은 꿈을 키우고 있다.

이씨는“시각장애인들의 IT교육 의욕과 열기는 정상인에 비해 조금도 뒤질 게 없다”며 “앞으로 IT 자격증을 중심으로 IT 전문학원에 시각장애인을 위탁,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도록 준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상인과의 정보격차를 줄여 시각장애인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보화와 관련해 소외와 차별이 없는 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이씨의 포부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